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엄마는 눈대중으로 해도 간이 참 잘 맞는데 나는 레시피대로 해도 제대로 맛이 안 날 때도 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의 특징중 하나는 계량컵, 계량스푼, 주방용 저울 등 음식물을 계량하는 도구가 다 갖춰져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레시피 중에 '배추 한 포기' 이런 식으로 무게나 부피로 나오지 않은 식재료가 있는 레시피는 일단 건너 뛰었다가 적당한 게 없으면 그 중에 적당한 걸로 고른다던지, 그 요리는 포기하던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시도해보던지 하게 된다.
모스크바에 먼저 오신 분들도 그렇고 나보다 나중에 오신 분들도 그렇고 한국에 있을 때는 사 먹거나 누군가 해주거나 했던 요리를 먹었지 자신이 직접 요리를 했던 사람이 별로 없다. 한국사람이라면 대부분 김치는 있어야 하는데 만들 줄은 모르니 사 먹는 사람도 있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배추김치를 모스크바에 와서 처음 담그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1키로에 만원정도 하는데, 내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 남편이 한식당에서 주문해서 2키로인가 3키로를 사왔는데 일주일에 일키로씩 먹더라. 나도 거의 이십년 전에 열무김치 한 번 했다가 '역시 나는 안 돼' 하면서 전혀 김치 담글 생각을 안했었는데 여기에 오니 할 수 없이 담글 생각을 하게 된다. 열번 정도 실패하다보면 잘하게 된다는데...ㅎㅎㅎ
처음에는 배추 한 포기를 사서 했는데,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먹을만 해서 곧 다 먹었다. 남편도 처음 한 거 치고는 이정도면 괜찮다고 해주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배추 두 포기를 했는데 완전 망하고 너무 맛이 없어서 결국 버렸다. 엄마는 김치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면서 찌개라도 끓여 먹으라고 하셨는데 정말 김치가 맛있어야 그것도 하는거지 맛없는 김치로는 뭘해도 맛이 없다. 맛없는 김치에 멸치를 잔뜩 넣고 볶아먹으면 어떻게 해도 맛있다고 해서 대형마트 술코너에 안주로 파는 멸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멸치를 잔뜩 넣어서 볶았는데...몇 달 만에 맡아보는 멸치 냄새에 잠시 넋이 나가 있다가 환상적인 맛을 기대하고 김치를 입에 넣었는데...역시나 맛없는 김치였다. 그래서 결국 버리고 만 것이다. 그 다음에 한 김치들도 맛이 없어서 등갈비에 넣어 김치찜을 하고는 고기만 골라먹고 결국 다 버렸다. 여름에 총각 김치가 나오길래 한번만 담그고 나머지는 사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사먹어도 맛이 없는 것도 있고 그랬다.
한참 김치없이 버티다가 한 번은 막김치는 어떤가 하고 사 멋었다가 '이거 내가 한 겉절이랑 같잖아' 하면서 그 다음에는 안 사고 겉절이를 몇번 더 하다가 교회에서 파는 맛있는 무로 깍두기를 했는데 맛있어서 한 번 더 하기도 했다.
도데체 왜 그렇게 김치가 맛이 없는걸까 고민을 했는데 처음에는 고추가루가 문제일까 했다. 여기 고춧가루는 때깔이 검어서 안 쓴다고, 그래서 한국에서 고춧가루를 가져다 쓴다고 아줌마들이 말했는데 나는 김치 맛은 고춧가루때문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한국에서 고춧가루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더란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김장하는데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나는 고춧가루를 써도 맛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또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파를 안 쓰고 여기 대형마트에 대파처럼 생겼는데 잎이 붙어있는 그런 것이 여기서 나는 대파인 줄 알고 썼었는데 그게 원인인가 했다. 그건 대파랑은 다르다고 누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대파를 구해서 대파를 썼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때부터 김치를 다 먹을 만큼 좀 맛있어진 것 같다.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보쌈 김치를 하다가 권사님이 주신 김치도 먹었는데 지난 일월에 한 김치는 찌개 그런 것도 안하고 온전히 김치로 다 소비를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자랑도 했다.
익으면 맛이 어떻게 변할지 두고봐야겠지만 어제 한 김치가 이제까지 내가 한 김치중에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배추를 오래 절이는 게 힘들어서 빨리 절이는데 집중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알지. 물과 소금을 10대 1로 해서 녹인 다음에 8시간 정도를 담가야 한다는 걸. 어제는 환상적으로 절여져서 헹구고 물을 빼는 도중에 너무 맛있어서 몇 개 집어먹었다. 생배추 느낌도 안나고 짜지도 않고...접어보니 잘 접히다가 끝에만 조금 생배추 구겨지는 소리가 났는데 그 정도가 좋은 정도인지 더 봐야겠지. 무가 없어서 안 넣고 배는 없지만 사과는 있고 해외에서 김치를 담그는 사람은 배 대신 사과를 넣기도 하는 것 같아서 사과를 대신 넣고, 또 얼마 전에 설탕대신 러시아산 꿀을 넣으면 김치가 덜 쉰다고 해서 설탕 한 숟갈 대신 꿀을 한 숟갈을 넣었다. 아직까지는 맛있다. 하루 정도 실온에 두었다가 익은 냄새가 나면 냉장고에 넣으라는데 결정적으로...익은 냄새가 뭔지 내가 모른다...제대로 냉장고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그동안은 익히지도 않고 그냥 냉장고에 넣었는데 그래서 맛있다가 나중에 맛이 변했던 건가...ㅎㅎㅎㅋㅋㅋ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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