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시아에서 살았을 때 생긴 일/러시아에서 생활하기

비자발적 앞뜰 야영

러시아의 현관문은 그런 문이 많다. 어떤 문이냐면 열쇠를 이용해서 잠갔으면 열쇠로 열어야만 열리고, 열쇠로 안 잠갔으면 열쇠로는 절대로 열 수 없는 문 말이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 살던 집에서는 한국에서랑 똑같이 지냈다. 열쇠로 잠그고 손으로 열고, 손으로 잠그고 열쇠로 열고 무척 자유로웠는데...

 

일년 전에 이사한 집은 말로만 듣던 그런 집인거다. 열쇠로 열고 집으로 들어오고 나면 손으로 문을 잠그는데 혹시나 남편이 늦게 들어오기라도 하면 나를 깨우지 않고 열쇠로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내가 잠들기 전에 손으로 잠갔던  문을 열고 다시 열쇠로 잠가놔야만 한다. 혹시 어찌어찌하여 문을 못 연다면? 한국처럼 열쇠 수리공을 불러서 고치는 게 아니라 문을 뜯고 갈아야한단다. 작년 겨울에 러시아에 오신 분이 당한 일이 뭐냐면...남편이 문을 열쇠로 잠그고 먼저 나갔는데 나중에 아이들과 같이 집을 나서려던 아내가 문이 안열려서 고생을 했단다. 당황해서 여기에서 꽤 오래 사셨던 분께 연락하니까 내가 이 글 처음에 언급한 그런 문일지도 모르니 열쇠로 열어보라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그렇게 잘  열고 나오셨단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왠만하면 아이들이 있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나가는 걸 싫어하니까 러시아의 이마트인 아샨을 잘 안가는데 프린터의 칼라잉크가 갑자기 필요해서 가게 되었다. 일찍 갔다오기만 했어도, 아니 내가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만 안했어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텐데 참말로 황당하다.

 

아샨으로 저녁 6시 넘어서 출발해서 9시 넘어서 집에 도착했는데 열쇠가 다 안들어가는 거다. 이건 집 안에서 손으로 문을 잠그면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손으로 문을 잠그면 열쇠로 문을 열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남편이 귀가한  줄 알고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길래, 자느라 그러는 줄 알고 전화를 해서 문 열라고 하니  아직 밖이라는 거다. 그럼!!! 집 안에 혼자 있던 아이가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잠들었단 얘기!!! 에구... 아이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달라고 해야하는 상황인거다. 한 번 잠들면 새벽이 될 때까지 잘 안 깨는 아이인데...😫😫😫  생각해보니 아이가 문을 잠갔다는 것은 내가 문을 안 잠갔다는 얘기!!!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다.

 

그래서 어쨌거나 세명이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잠은 자야겠으니 문 밖에서 깜짝 야영중이다 ㅎㅎㅎ 이름하야 비자발적 앞뜰 야영.(어떤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뒤뜰에서 야영한다던데..) 작년에 이사하고 나서 혹시 쓸까 싶어 모아서 계단으로 가는 길 복도에  두었던 상자를 꺼내와서 깔고 눕네😂😁😃

 

 

아이야 제발 좀 얼렁 좀 깨서 문좀 열어주라. 화장실 가고 싶다🤣😫😨 넉넉잡아 3시간은 더 있어야쓴디...ㅠㅠㅠ

 

*********************************************

지금은 이 일이 있은 후부터 4일이 지난 시간이다.

 

3시간이 지나 안에서 아이가 인기척 내는 소리(나에게는 들리지 않던)를 듣고 밖에서 자다가 깨어있던 아이가 소리를 질러 집안에 있던 아이를 깨워서 집안에 들어왔다.

 

근데 이상하기도 하지... 아이는 자기가 문을 잠그지 않았단다.

 

나중에 생각하니 문을 열려면 문을 안쪽으로 당기고 열면 잘 열리니까 아이가  잠금장치를 잘 돌릴 수 있게 밖에 있던 내가 문을 안쪽으로 밀었었다. 아마도 그때쯤 아이가 자기가 문을 잠근 게 아니라고 했겠지. 그래서 당황하며 열쇠를 다시 넣을 생각을 했겠지. 하여튼 그러고 나서 열쇠를 넣었더니 열쇠가 들어가서 돌려서 열었던 거였다. 열쇠가 안들어가서 당황스러웠을 때 문을 좀 안쪽으로 밀어서 넣어봤으면 들어갔을런지... 그 전에는 이런 적이 전혀 없어서 그런 생각을 못했던건지...  

 

그래서 이 일이 일어나고 나서 며칠 후에도 열쇠를 넣었을 때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안 들어가서 문을 밀었는데도 안들어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남편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잠갔다고 한다. 그 때의 그런 예외적인 상황은 아직 또 안 일어났다.

 

어쩌면 그 때 아이가 자기가 잠가놓고 기억을 못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