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5년쯤 전부터 밀가루를 먹으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일명 밀가루 알레르기.
그걸 알고나서 밀가루가 들어간 걸 안 먹으려고 하니 별로 먹을 게 없었다. 과자들은 왠만하면 밀가루로 만들어져 있다. 쌀과자나 쌀뻥튀기로 만든 과자 정도 말고는 내가 먹을 게 없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집에 갇혀 지낼 때도 초코칩이 들어간 과자 같은 것은 그림의 떡이었고, 거기에도 쌀뻥튀기로 만든 과자는 있어서 그것을 먹곤 했다. 찐빵, 만두, 호떡, 햄버거에 다 밀가루가 포함되어 있다. 떡은 괜찮았지만, 떡만 먹기도 힘들고, 비싸기도 하고. 그래서 밀가루를 먹은 다음에 인스턴트 생강차를 먹으면 배가 덜 아프니까 밀가루를 먹고 생강차를 먹는 것을 택하기도 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식빵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만드는 영상을 보았다. 나는 아예 식빵을 못 먹으니까 쌀로 식빵을 만들어서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해서 그날부터 쌀로 만든 폭신한 빵을 먹어보기 위해서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유튜브로 검색을 해보니
저탄고지 식단으로 빵을 만드는 것이 나왔다. 카사바가루(엄청 비싸다)에 차전자피 가루를 넣어서 만드는 것.
쌀로 만드는 빵도 검색해보았다. 쌀가루에 강력분, 박력분이 있길래 더 알아보니 쌀가루에 식이섬유를 넣거나 글루텐을 첨가하는 것이었다.
써니브레드라는 쌀빵가게가 있는데, 이 사람은 밀가루를 전혀 못 먹는데(심지어는 아몬드가루를 생산할 때 밀가루를 사용하여 기계를 세척한다고 그런 아몬드가루도 못 먹으니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더라), 빵을 먹고 싶어서 연구를 하여 서울에 가게를 낸 사람인데, 책도 있고, 클래스 101에 강좌도 열고 있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던지, 배워보던지 해야겠다. 맛있다고 하던데...
발효종도 검색이 돼서 알아보니 이스트가 밀가루를 먹고 뱉은 것을 빵으로 구워먹는 것이라는데...소화가 잘 되어 환자들도 먹긴 하지만 이것도 결국 폭신하지는 않단다.
차전자피가 결국 섬유소니까 쌀가루에 차전자피를 넣어서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해서 그렇게 해서 빵을 만들어 먹었는데, 역시나 폭신하지는 않았다. 백종원의 식빵푸딩 레시피대로 해서 간신히 먹어치웠다. 그렇게 잘못 만든 것은 촉촉하게 다시 만들어서 먹는 게 포인트인 것 같다.
그렇다고, 밀가루를 먹는다고 계속 배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과자 같은 걸 만들어 먹을 때는 배가 안 아팠다.(그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했더니 아마도 글루텐 때문이 아니라 첨가물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그런 건지 아닌 건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밀가루가 조금 들어있는 걸 먹으면 또 배가 안 아프다. 라면이 정말 맛있는데 먹고나면 배가 아파서 라면 국물에 쌀국수나 냉면이나 당면을 삶아서 먹곤 했다. 라면 맛이 온전히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배가 안 아프니까 그렇게 나름 라면 맛을 즐기고(?, 아이 말로는 '끔찍한 혼종'이란다. ㅋㅋㅋ)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냉면에도 밀가루가 많이 들어있었다. 78%정도. 그런데도 배가 안 아팠다.
잘 가는, 집 근처 빵가게에 밀가루 안 들어가고 쌀로 만든 빵이 있다고 해서 먹었는데, 배가 아픈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다음날 가서 확인을 하니까 글루텐은 섞는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쌀로 만든 빵이 있다고 해도 글루텐을 섞는지도 알아봐야겠군.
그런데 이제 그렇게 안해도 될 것 같다. 아마도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찾다보니 밀가루의 글루텐을 분해하는...'콩가루'가 있다...
그래서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콩가루를 빵이나 면에 섞어서 하면 어떻게 될까 한참 찾아봤다.(아마도 폭신한 빵은 안될 거라고 예상하면서).
'콩가루 칼국수'라는 것이 있는데, 레시피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콩가루 2 : 밀가루 3을 섞어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는 거라고 했다. 그런 면을 팔지는 않으니 먹고 싶으면 내가 해서 먹어야겠는데 언젠가 해 먹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
빵에 넣을 때는 밀가루와 섞는 것이 아니라 콩가루로 크림 같은 걸 만들어서 발라먹던지, 빵 속에 충전물로 넣는 것 같다.
집에 마침 서리태콩가루가 있어서 밀가루를 먹고 콩가루를 1t씩 물에 타서 먹으니까(그냥 먹으려니 목이 막힌다.) 아직까지는 배가 하나도 안 아팠다. 정말 신기하다. 나름 실험을 해보겠다고 연말에 선물로 받은 과자를 먹고 콩가루를 안 먹었더니 역시나 배가 아프더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쾌함에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런 실험을 하기 전에 먹었던 만두와 찐빵은 콩가루를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요 사이 케잌을 두 번 먹을 일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배가 살살 아파서 '아! 아침에 먹은 케잌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다음 케잌을 먹을 때는 콩가루를 먹어봤는데, 배가 전혀 아프지 않은 거다.
'오잉? 정말 콩가루 때문인가???"
그래서 그 다음부터 밀가루를 먹고 콩가루를 먹어보는 실험을 했다.
라면도 성공,
햄버거도 성공.
건면 사리가 없어서 라면 대신 넣어 먹었던 국수는 조금 배가 아파서 그 다음에는 콩가루를 조금 더 먹었는데, 역시 괜찮았다. 국수 먹고나서는 콩가루를 좀 더 먹어야 하는구나. ㅎㅎㅎ
이제 기회가 되면 식빵도 도전해봐야겠다.
2월 7일 추가 기록함.
식빵도 보기좋게 성공했다.
어느날 문득 '콩가루를 조금 더 먹어서 배가 안 아팠다면...생강차도 더 먹으면 배가 덜 아프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밀가루를 먹고 생강차를 두배로 먹었다.
배가 살짝 아프긴 했지만 확실히 그 전보다는 덜 아팠다. 하나 더 먹으면 하나도 안아플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생강차 자체에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사실 두 개를 먹을 때도 너무 달아서 다음에도 이렇게 먹을 수 있겠나 싶었다(안 달게 먹으려면 그만큼 물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고 싶지는 않고..). 그러면 생강가루를 사서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어차피 먹으려면 설탕이 없이는 힘들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또 다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강차는 어차피 우리 집에서 나 아니면 먹을 사람이 없고, 생강차도 물에 타먹고, 콩가루도 물에 타 먹으니까 생강차도 소비할 겸 생강차에 콩가루를 타 먹으면 어떨까?'
생강차 다 떨어지면...콩가루만 먹으면 되니까...(콩가루만 물에 타 먹기에는 다른 데서 맡기 힘든, 약간은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런다고 그 때마다 요구르트 같은 데 타 먹으려면... 그런 정도는 아니니까...)
예전에 살던 집 근처 약국에서 진단을 해준다고 해서 무료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신장이 안 좋다고 한다. 그러면 검은색 음식을 먹으면 좋다고 해서 콩도 웬만하면 검은색으로 먹느라고 서리태콩가루로 장만했다. 새치도 있어서 검은 머리 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는 하는데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먹는거지 뭐...
저렇게 먹으니까 적당히 달고 적당히 콩가루 냄새도 안 나서 좋긴 하다.
(컵에 꽂혀 있는 숟가락은 다이소에서 산 7ml짜리 계량스푼이다. 콩가루를 덜 때, 물에 타서 풀 때 사용한다. 그 계량스푼 세트에 3ml짜리도 같이 있었는데, 그걸로 계량해서 그 정도만 먹어도 되는 것 같다. 저 사진을 찍을 때는 그 계량스푼을 분실했던 때다. 지금은 찾아서 그것도 잘 사용하고 있다.)
부아메라가 혈행개선에도 좋고,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고 해서 캡슐로 된 약을 구입해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밀가루 먹고 콩가루를 먹으면 괜찮은데, 이걸 먹고 나면 밀가루 알레르기와는 똑같지는 않은 배탈이 난다. 구입처에도 문의를 해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 봤는데, 하루에 10g 이상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다는 내용만 나와있다. (내가 구입한 것은 하루 한 알 먹은 것이고, 30정 합해서 18g이다.) 도데체 배가 왜 아픈거지??? 배가 아플 때의 그 불쾌한 느낌이 싫어서 다시 시도는 안해보고 있는데 이거 먹고 콩가루를 먹으면 괜찮은지 실험해봐야겠다.
아 참, 밀가루를 먹기 시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또다시 피부가 가렵기 시작했다.(겨울인데 애들이 커서 습도 조절도 그리 신경 안 쓰니까 건조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5년전 쯤 하도 가려워서 한달을 참다가 생각다못해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서 소양증이라고 진단을 받았는데 육십 몇가지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괜찮다가 또 재발하기도 하면서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만성이라는 진단도 받았다. 심할 때는 긁은 곳의 피부가 빨개지면서 경계선이 보이게 쑥 올라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다.(그래서 사람들이 내 피부가 변하는 걸 보고 놀랐다가 금방 가라앉는 걸 보고 안심을 한다. 가끔 얼굴에 그런 현상이 일어날 때도 있는데, 좀 심해졌다고 생각할 뿐 내가 어떻게 해볼 도리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가라앉을 때까지 사람들 안 놀라게 무언가로 가리고 있는 것 밖에는...) 그래도 지금은 예전만큼 심하지는 않아서 일단은 두고 보고 있기는 한데, 밀가루로 만들어진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싶은 욕구가 가라앉으면 좀 끊고 관찰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