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귀국해서 3일 만에 당근마켓을 이용해서 큰 살림살이를 장만했다.
그중에 잘 구입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로봇청소기이다. 다만 이것은 판매하는 장소가 비교적 멀고 가벼워서 3일 만에 장만한 건 아니고 2주일 후에 내가 직접 가지러 갔다. 챙길 것도 많은 와중에 어떻게 그걸 안 까먹고 챙겼는지 신기하다.
러시아에 있는 동안 청소기 없이 지내기도 했지만, 내가 워낙 게으르기도 해서 내가 청소하기 싫을 때 나 대신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뭐, 청소하느라고 나만 움직이지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지는 않으니...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도 하기 싫을 때가 많다. 러시아에서 아이들 등하교할 때 동행해야 해서 학교에서 다른 학부모님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집안일 하기 싫다고 하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곤 했다.
청소기는 내가 들고 움직여야 하는 것인데, 로봇청소기는 자기가 알아서 움직이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당근마켓에서 판매자는 모터를 얼마 전에 갈았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청소가 잘되는 것 같았다.
구입을 하고 나서 거의 두 달간은 매일매일 로봇청소기를 돌린 것 같다. 그 후로는 그것 돌리는 것도 귀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시작'버튼만 누르면 되지만, 그러려면 청소기가 잘 돌아다닐 수 있게 주변에 있는 물건을 치워야 하는데, 그것도 귀찮다. 그걸 이겨낼 용기가 있는 날이 청소하는 날이다.) 처음에 너무 좋아서 동생에게 '너도 써보라'라고 했더니, '사용 안 한지 1년 되는 날 갖다 버렸어'라고 한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려나.
로봇청소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로봇청소기가 갈 만한 곳의 물건을 왠만하면 위로 올려둔다. 그렇게 되다 보니 바닥에 물건들이 최소한으로 있게 되어 집안이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 같다.
로봇청소기 중에 물걸레가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던데, 내 것은 그렇게는 안되고 물걸레질이 필요하면 내가 물티슈 들고 직접 닦는다.
로봇청소기를 여러 번 돌리다보니 로봇청소기가 갈 수 없는 가구 위에 쌓인 먼지들은 내가 직접 닦아줘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어딘가...' 한다. 나는 잘 제거할 수 없는 먼지도 로봇청소기 안에 있는 쓰레기통에 차곤 한다.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다가 물건에 부딪치면 살짝 방향을 틀어 피해서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려던 방향을 잃어버리고 아예 다른 데로 가버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왠만하면 로봇청소기가 가는 길 위에 있는 작은 물건들은 로봇청소기가 오기 전에 빨리 치운다. 내 발에 부딪쳐도 그곳을 피해 가긴 하는데 나는 내가 재빨리 피하곤 한다. 로봇청소기가 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ㅎㅎ. 아무도 안 하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나는 애들한테 가끔 그런다.
"청소기님 일하시는 데 방해하지 말아야지."
애들은 "그게 뭐냐"고 하지만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청소 시작
청소기가 조금 높은 곳은 못 넘어감.
청소기가 낮은 문턱을 넘어서 청소하러 들어감.
청소기는 일하는 중.
청소기가 방으로 들어가면 어떤 때는 더 많이 돌고 나오라고 문을 닫고 방에 가둬둔다.
청소기가 일 잘할 수 있게 큰 쓰레기 치움(애매하게 작은 쓰레기는 청소기가 잘못 먹고 제자리에 멈춰버린다. 특히 마스크...)
청소 다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감.
사실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일 허무한 게 청소한 다음에 금방 더러워지는 거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닌 바에야 그럴 수밖에 없지만, 나만 청소를 하니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청소하기 싫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바로
'머 리 카 락'
청소한 다음 돌아서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라디오 사연을 듣다 보니 청소하고 나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줍는 남편 때문에 덜 깔끔한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연을 보내기도 했는데...
로봇 청소기는 그런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 어떤 때는 청소기가 같은 곳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기도 하니까 한 번 지나갔을 때 미처 줍지 못한 머리카락을 청소기가 주워줄 때도 있고, 또 오늘 못 주우면 내일 또 돌리면 되니까...
먼지를 먹는 기계이다 보니 가끔 로봇청소기가 먹은 먼지를 제거해줘야 하는데, 솔에 낀 머리카락이 말도 못하게 많다.
어찌 보면 나는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기 위해 로봇청소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기에서 머리카락을 빼내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지만 내 수고를 덜어주니 항상 감사해하면서 머리카락을 제거해준다,
양 옆에 있는 솔이 안쪽에 있는 솔 쪽으로 돌아가면서 먼지를 모아주는데 거기에도 머리카락이 얼마나 많이 끼는지 모른다. 로봇청소기를 청소할 때마다 손에 잡히는 것은 제거해주기도 하지만, 손에 안 잡히고 사이사이로 들어가는 머리카락이 많은지, 언젠가 한 번은 청소하는 도중에 양 옆에 있는 청소솔을 고정하는 나사가 빠지면서 바닥에 청소솔이 나뒹군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 있는 것이었다. 마치 머리카락이 더 이상 들어올 곳이 없어 참다참다 터졌다는 듯이.
청소 솔에 낀 머리카락 제거
청소기가 둥글다보니 직각으로 된 구석은 청소를 못한다. 그 정도는 호흡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내가 해줘야지 어쩌겠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