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좋고 어떤 면에서는 나쁘다.
동생이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너무 힘들어하는 거다. 그 심정 이해한다. 물론 상황이 나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데 아이를 낳은 후의 세상은 정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에게도, 어디서도 전혀 듣도보도 못한 세상이었다. 나야 왠만하면 긍정적이고 별 불만이 없고 왠만하면 이해하는 성격인데도(그래서 그러는지 어떤 사람은 나에게 다른 사람 험담을 한다 ㅠㅠ) 아이를 낳으니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고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는 것처럼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내팽개치고 싶은...왜 이런 세상에 대해 아무도 말을 안해준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 후에 아이엄마인 직장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여러 사람이 '나는 모성애가 없나봐. 애가 예쁘지 않더라구. 그래서 죄책감이 들어.'라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무척 놀랍기도 하면서도 반갑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상담 공부를 하고 있던 때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이 당연한게 아닌데 어디가서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지도 못하면서 속앓이를 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하고 아이에게도 말할 정도로(아이가 처음에는 서운해하더니 지금은 아이도 나와 똑같이 말하면서 나도 자기꺼로 만들어버렸다. ㅎㅎㅎ 나는 그 말이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일단은 아이니까 봐준다 ㅎㅎㅎ) 말하자면 자존감이 나름 강한 사람인데 그런데도 그렇게 힘들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정말 얼마나 힘들까 싶다.(이것도 편견일까봐 조심스럽긴 하다) 나는 그런 얘기를 되게 자주 한 거 같은데 아직 아기가 없는 동생은 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안해서 언니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단다. 어제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잠깐 내려온 동생은 내가 그 말을 하는 동안 펑펑 울더라.(위로가 됐는지는 다음에 물어봐야지) 내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봤고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으로 말해도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좋게 보면 소득이다.(결혼 전에는 그런 걸 느낀 적이...딱 한 번 있기는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되게 싫어했다.) 내가 전혀 듣도보도 못한, 결혼을 안했으면 몰랐을 세상을 만나게 된거니까. 말로 해도 안 통하는 사람을 키우면서 어쩌면 평생 나를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은 덤이다. 아휴~
요약하자면 결혼을 해서 좋은 것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을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것이고(근데 왠지 나쁜 것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내가 그래도 좋은 점이라고 쇄뇌를 하고 있는 것인가) 나쁜 것은 사회적 편견에 나도 동화가 돼서 마음을 급하게 먹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뭔가 모자란 사람이 된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내 인생에 대해 별 생각도 하지 않고 결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미리 정보를 많이 얻고 여행을 가도 실제로 가보면 실제로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인생도 일단 가봐야 그것의 실체가 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여러 번 가 본 곳이라도 혹 다른 길이 있으면 위험하지만 않다면 기꺼이 가보는 나는 내가 좀 더 깊이 생각했다면 어쨌든 결혼이야 내가 해보지 않으면 그게 어떤 건지 모르니까 시도는 했을 것 같고 사람에 대해서는 정말정말 많이 생각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이제까지 옳다고 믿는 세상에 대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한다고 하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것이 폭력인 줄도 모르고 무언가를 강요하는 사람이 많은데 학교에서 독신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의 판단 능력이 있으니 누군가의 안전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존중해주고 행동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혼하면 '저 사람은 내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나와는 다른 한 사람으로 존중해주는 것이 힘들고 저 사람이 힘들 때 나도 같이 휘둘리는 일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하든, 동거를 하든, 자식을 키우든, 독신이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는 무척 중요한 것 같다.
가족의 형태는 참 다양해지고 있다. 꼭 가족 관계가 아니더라도 노인이 젊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방값을 안 받거나 덜 받거나 하는 관계는 앞으로 많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참 신선했다. 사실 그런 관계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안전이 아닐까한다. 같이 사는 누군가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나를 해칠 염려도 있고 걱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걱정없이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을 만들어놓으려면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모임에 참여해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놓아야하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 걱정없이 혼자도 잘 살 수 있으려면 미리미리 건강관리를 하면서 살아야겠지.
한편으로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혼자 사는 많은 여자들이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사는 것 같다. 이는 여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위해 여자의 안전이 위협을 받든말든 여자를 이용하려는 일부 남자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기다 대고 페미니 메갈이니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살 안쪄서 고민인 사람이 자신의 고민을 자유롭게 말하지도 못하는 사회 분위기도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짐 옮길 때마다 남자들에게만 맡기는 것도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께)
앞으로는 인구가 줄고 독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독신들도 편견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꼭 독신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삶의 형태가 생겨날 것이다. 그런 변화에 대해 낯설어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지만 그런 삶의 형태가 나타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니만큼 인간의 안전과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어'라고 면전에서 말한다든가 '세상이 망조가 들었네'하면서 폭력적인 태도를 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공존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온갖 휴대용 기기가 등장하는 시대에 2G핸드폰 들고 다닌다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폭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다면 사과를 해야겠지.